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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즐거움에 대한 에필로그(Epilogue)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4/12/02
  • 조회수1842

추억과 즐거움에 대한 에필로그(Epilogue) 사진1

(중부피플107)KOREAN MONSTER’와의 행복한 동행 한희재(사진영상학과,02,MK스포츠)
추억과 즐거움에 대한 에필로그(Epilogue)

돈과 수표를 만드는 용지의 원료가 솜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교한 인쇄와 위변조 방지, 땀이나 화공약품에도 견딜 수 있는 고품질의 용지로 솜이 목재 펄프 보다 우수하고 제격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돈과 유가증권을 만드는 한국조폐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중부동문들의 추억과 즐김에 대한 에필로그가 궁금하다.


한희재 동문 모습김정기! 한국조폐공사 ID사업단 시스템사업팀 과장


김정기 과장은 ID사업단 시스템사업팀에서 ID영업 담당을 하고 있으며 카드 류 영업 및 고객관리를 주로 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여권, 전자공무원증, 청소년증, 항공사승무원증 등 카드류 업무이다.


추 억


어느덧 대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에 첫발을 내딛은 지 9년. 9년 전 겨울 추운 날씨를 벗 삼아 나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학교도서관에 쉴 세 없이 출근도장을 찍었었다. 내가 목표하던 그곳이 있었기에 추위도 잊고 내 미래를 향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버티고 버텼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은 우리나라의 모든 보안제품 즉 은행권, 여권, 주민등록증, 상품권, 우표 등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조폐공사 ID사업단 시스템사업팀이다. 처음 조폐공사에 입사 후 경북 경산에 위치한 화폐본부에서 첫 근무지를 발령받아 일을 해오던 중 2013년 11월 대전 본사로 발령이 났다. 대전 본사로 들어오니 학교 동문들이 많아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지금 되돌아보니 9년 동안 가장 애착을 가졌던 업무가 생각이 난다. 바로 ‘품질분임조 담당자’이다. 이 업무로만 4년을 해왔다. 내 근속 기간 중 가장 오래 한 업무이기도 하다. 이름만 들어선 어떤 일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이 일은 매년 새로운 운영계획을 세우고 참가팀을 발굴해 대회에 출전시켜 성과를 내는 업무이다. 참가팀에게는 대통령상이 수여되는데, 이를 위해 담당자로서 보이지 않게 뒤에서 서포터 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이 일을 하다가 결과가 나쁘면 심리적으로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성과로 이어질 때 보람도 느끼며 즐겁게 일했던 것 같다. 내가 애착을 더 가졌던 이유도 한국조폐공사 9년차에 가장 역동적인 일이었기에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은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를 맡아서 배우고 있는 단계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는 많은 인내가 필요한 듯하다. 꼭 나를 시험해 보는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이 업무도 익숙해지면 또 다른 새로운 추억으로 생각되어질 것임을 안다. 또한 후배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나는 이 일터에서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선배들이 기반을 잘 닦아놔야 ‘중부대 인쇄미디어학과 졸업생들 잘 하네’라는 평을 들을 것이고,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믿기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또한 늘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류현진선수와 유리베선수정해원! 한국조폐공사 기술처 기술관리팀 대리


정해원 대리는 기술처 기술관리팀에서 공사가 생산하는 인쇄제품에 대하여 신규제품 제조 가능성 검토 및 규격, 공정설계(수출은행권(페루) 제조가능성 검토 및 제조규격, 공정설계 업무 총괄), 제품개선(작년 100억원대의 자기앞수표 금융사고 발생에 따라 새 수표 위변조방지요소 보강방안 기획, 제조규격 및 공정설계), 기타 공사제조 인쇄제품 제조 및 생산, 기술검토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즐 김


“무슨 일을 하시나요?” 오랜만에 동창을 보거나 본인 소개를 하는 자리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 돌아오는 질문이다. 당연히 내 소속을 밝히지만 그 다음 질문도 이제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조폐공사 다닙니다.” “어이구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다니시네요?” “네! 돈 많이 보는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상대 질문의 의도야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대답은 항상 나의 노력과 직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자신감을 담고 있다. 이 자리에 있기까지 나는 운도 많이 따른 것 같다. 내가 원하던 일을 위해 중부대 인쇄미디어학과에 들어갔고, 한 학기, 한 학기를 마치면서 조폐공사에 입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까 내심 바라던 한국조폐공사에 입사를 했고 더불어 원하던 업무를 하고 있다. 특히 작년은 수출은행권과 새 자기앞수표 발행을 위한 기술검토 업무를 하면서 내 키와 내 머리가 한 뼘은 더 큰 것 같다. 당시 어렵고 부담되는 업무에 ‘내가 왜 이 시간까지 남아 이 고생을 하나?’라는 짜증도 밀려왔지만 그래도 현실에서의 즐거움을 찾아 애를 썼고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고자 했다. 지금 이 일이 어렵고 짜증나 회피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회상을 한다면 지금의 순간이 가장 그리울 것임을 이미 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원동력이 아닐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환경이 주는 위기, 내가 스스로 만드는 위기는 반드시 생긴다. 그때마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게 내 방식이고 지금까지는 내 방식이 꽤 들어맞고 있는 것 같다. ‘전성기가 언제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제 서른 중반의 나이에 전성기나 논하는 애늙은이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전성기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에서도 즐거움은 필수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다니는 직장이 즐거움을 주는가?’환경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내 일터에서 즐거움을 찾고 지금 순간을 미래의 그리움으로 만들 수 있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싶다. 취업 때문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내는 후배들도 있을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지금 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것이고 그리운 시절이 될 것이다. 힘든 것도 즐거움으로 바꿔 노력한다면 그리 멀지 않은 훗날에 이렇게 힘들게 취업공부에 열을 올렸던 학창시절이 즐거운 추억들로 기억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