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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당조폭 조윤호 동문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4/09/12
  • 조회수1632

허당조폭 조윤호 동문 사진1

(중부피플104)초심을 지키는 중부인으로 조윤호(연극영화학과,97,KBS22기 공채개그맨)

Q. 잊지 못할 무명시절의 조윤호


‘항상 사람은 똑 같아야 한다. 끝!’


군 출신의 엄하면서도 자상한 조윤호 동문의 아버지가 보낸 문자다.


지금 조윤호 동문에게는 하루 24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까지 그는 정말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가 예나 지금이나 초심을 잃 지 않는 이유다. 그의 시작은 아이돌이었다. 2002년 3인조 아이돌그룹 ‘이야말로(Eyamallo)’로 데뷔를 시작한다. 같은 해 대한민국은 월드컵 4강으로‘꿈은 이루어진다’며 온 나라가 들썩거렸지만, 그의 꿈은 끝내 꿈으로 그쳤다.“군 제대 후 2명의 친구와 2001년부터 준비해서 2002년 데뷔 싱글을 냈어요. 그리고 2004년 말 해체했지요. 당시에는 음반을 내고 뮤직비디오를 통해 알리는 방식이 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뮤직비디오를 못 내게 되었고, 결과는 뻔했지요. 활동하는 동안 10원도 못 벌었어요.”


그 후 조윤호 동문은 어머니의 권고와 아버지에 대한 생각, 그리고 형의 도움으로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시의 꿈인 헤어디자이너로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노력한 만큼 인정도 받았다고 한 다.“미용 학원 원장님이 10년 만에 이런 학생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잘했어요. 그 결과 저는 당연히 이 길이 내길이구나 싶었죠”


“하지만 그때 권재관 선배가 내 앞에 나타났고, 또 한 번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Q. 권재관, 그는 나의 영원한 선배


권재관과 조윤호“솔직히 저는 개그맨에 꿈이 있어서 도전한 것이 아니라 도전했다 가 꿈이 생긴 경우입니다. 권재관 선배와 얼마나 친했냐면 학교 다니다 여름에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다니기 너무 힘들어 자취하는 재관선배 집에서 한 달간 살았는데 그때 재 관선배의 자취방이 5층이라 5층에서부터 날 업고 내려가 학교까지 데려다줬을 정도였으니까요.”라고 말하는 조윤호 동문은 일 년 선배인 권재관 동문에 대해 각별한 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2013년 ‘자랑스러운 중부인상’ 선발과정에서도 그들의 훈훈한 선후배간의 정을 보여주었다. 당시 대학에서는 권재관 동문의 활약상을 높이 평가하여 자랑스러운 중부인상의 대상자 선정을 통보해 주었다. 그때 권재관 동문은 “지금 개그콘서트에서 큰 비중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개그맨으로 대성할 후배가 있다. 그 친구도 같이 수상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사실 대상자가 확정된 상태라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권재관 동문에게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지만, 후배를 생각하는 마음은 모교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달이 되었으며 또한 잔잔한 감동을 주기고 하였다.


그렇게 대학시절부터 항상 붙어 다녔던 두 사람. 세월이 흘러 20대후반이 되어 다시 만나 권재관 동문의 권유로 그들은 KBS 개그맨 공채시험에 도전하게 된다.‘개그콘서트’를 즐겨보지 않을 정도로 개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조윤호 동문은 당황했지만, 선배와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고 한다.


 "같이 하기로 마음먹고 모텔에 들어가서 개그를 짰습니다. 심사위원께서‘올해는 제대로 된 애들이 왔네'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뜻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망생이 많은데 쌩뚱 맞은 애들이와서 다른 사람들이 짜지 않았던 이상한 걸 짜오니까 신기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난 아니구나. 개그맨과 연은 없나보다'며 원래하던 일을 하려 했는데 폭소클럽 PD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다행스럽게도 코너 하나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개그사냥'에서 3회 우승 후 '개콘'이 아닌 '폭소클럽'으로 다시 돌아온 권재관 조윤호 동문. 두 사람은 '폭소클럽'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 번 KBS 공채 시험에 도전했다. 그 결과 권재관 동문만 합격하 고 조윤호 동문은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왜 나만 떨어졌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내년엔 꼭 붙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작가님, 감독님이 걱정해주셨지요. 그 해 지망생 생활을 하고 2007년 개그맨 시험을 준비한 지 3년 만에 공채시험에 붙었습니다. 그래도 사실 준비기간이 다른 개그맨들에 비해 길진 않았습니다.”


 KBS 22기 공채 개그맨이 된 기쁨도 잠시. 개그맨으로서 조윤호의 삶은 그다지 평탄치 않았다. 잘 나가는 동기들에 비해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하다가 지난해 특히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한 번도 권재관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조윤호 동문. 이처럼 그의 뚝심과 선배의 사랑이 지금의 조윤호를 탄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Q. 아내와 아들,그리고 개콘 동료들은 영원히 사랑하는 나의 가족


한희재 동문 모습"공채 개그맨이 되고 나서 좋은 점은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것입 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행복도 2010년 결혼하면서 끝! 더군다나 2011년 아들 해성이를 얻고 나서부터는 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계형 개그맨으로 순간 전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달콤했어야할 신혼에 조윤호 동문은 개그맨의 월급으로는 아들 해성이의 분유랑 기저귀도 비싼 형편이었다. 그래서 2013년이 그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한다. 찍는 코너마다 망했다. 또 한 번의 이직을 고민하던 조윤호 동문에게 그 당시 아 내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아내에게 얘기했어요. 2013년 말까지만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일을 하겠다고요. 몇 달간 돈 한 푼 못 벌어오는 저를 아내는 끝까지 믿어줬어요. 이제껏 한 번도‘돈없어. 돈벌어와’라고 한 적이 없었어요. 정말 고맙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요즘 그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아들 해성이다. 네 살배기 해성이.“아들이 놀다가 제가 출연한 광고가 나오면 TV앞에서‘아빠, 빠악, 끝’흉내를 내요.”라며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처럼 아내와 아들은 조윤호 동문에게 살아가는 이유이며, 특히 아내는 정신적 지주라고 자랑했다.


또한, 조윤호 동문은 같은 팀원인 안일권, 류정남, 허민, 이동윤, 이성동, 그리고 개콘의 동기와 선후배들에 대해서“그들은 저의 형이고 동생입니다. 가족이지요. 제가 힘들 때도 옆에 있어 주었고, 제가 기쁠 때도 그들은 항상 저의 곁에 있어 줄거예요.”라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Q. 동문여러분, 항상 응원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남겨달라는 메시지에서 조윤호 동문은“중부 동문여러분, 97학번 개그맨 조윤호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랑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모교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 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많이 응원해 주세요. 특히, 후배님들! 대학시절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많이 경험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부인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당황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끝!”라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