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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 정말 우리의 것일까?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1/10/27
  • 조회수2460

우리의 역사, 정말 우리의 것일까? 사진1

(중부피플73)우리의 역사, 정말 우리의 것일까? 중부신문사 안예은 경찰법학과,06학번

우리의 역사인데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요즘 우리나라의 역사가 진정 우리나라로서 역사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내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 어째서 ‘우리의 것’에는 민감하지 않는 건지 심히 안타깝기 그지없다.


작년 8월, 우리나라는 국치 100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국치 100년을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를 단 집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광복절, 장관 내정자 9명 중 8명 국기 안 달았다'라는 기사까지 떴다.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흔히 말하는 지배층이 나라를 되찾은 날을 대수롭지 않은 휴일로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국치 100년을 맞은 올해마저 그런데 다른 해는 어떠했겠는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100년 전 일제에 의해 병합조약이 체결된 8월 22일부터 그것이 공표된 29일까지 한반도엔 기나긴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 악몽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서러웠으며, 많은 생명을 억울하게 앗아갔다. 하지만 그 악몽을 벗어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고통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이제는 역사 속에서만 기억되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2014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는 사회 탐구 영역의 선택 과목을 네 과목에서 한 과목으로 줄인다’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고개를 내어 저을 수밖에 없었다. 선택하는 것이 고작 한 과목뿐이니 공부하기가 번거로운 역사는 아마 점점 더 선택의 비율이 줄어들 것이라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택의 비율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 과목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험 보지도 않는 과목을 열렬히 공부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당연히 역사 공부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패배와 치욕은 잊으려는 기억의 일반적 작용에 의해 굴욕적인 과거의 기억은 우리에게서 점점 잊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의 역사는 누가 기억해 줄까.


신문을 들고있는 안예은학생“과거는 바꿀 수 없다.”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과거에 대한 진실은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며, 누군가가 과거를 왜곡해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浮說)을 세계인들이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임나일본부설에 의하여 “삼국 시대부터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라는 문장이 성립하게 된다. 이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타율성론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즉, 임나일본부설이란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발해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고 세계가 인정한다면 고구려의 역사와 영토는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역사를 통째로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소홀해질 뿐이다.


이러한 심각성을 사람들이 눈치 채서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요즘, 2014년 한국사 선택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선정하는 등의 많은 노력이 조금은 엿보인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는 것이 문제다. 공무원 시험에 필수가 되는 등, 역사를 필수로 하려는 노력은 엿보이나 아직까지 사람들의 머릿속엔 우리 역사는 영어, 수학보다 못한 존재이며, 제대로 알지 못한 사실들을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나는 아니라고 자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자신 있게 역사에 대하여 외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역사에 대해 심히 무관심하다는 것을 느낀다.


독도에 대해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단지 화만 내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략을 쌓아야 하건만 우리는 단순히 그 순간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시간이 지나가면 그런 일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독도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줄어든다. 그런데도 우리의 모습에서 역사를 외친다 할 수 있을까 싶다.


그에 비해 일본은 서서히 창과 방패를 준비하며 대비한다.


적어도 나는 거짓된 역사든, 진실 된 역사든 과거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이런 모습이야 말로 진정으로 ‘역사에 관심이 있다’라고 자부한다. 그것은 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누가 더 많은 증거로 논리적으로 보이느냐만 볼 뿐이다. 그리고 점점 일본의 의도대로 세계는 일본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독도문제 뿐이 아니라 간도 문제 또한 그렇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세상이라도 강자와 약자는 존재한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한다고 가정하자. 국제법상 100년이 지나면 그 약소국은 식민지가 아닌 강대국의 영토로 포함된다. 그렇기에 영국과 중국은 홍콩의 계약을 99년으로 정하였으며, 중국은 홍콩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간도 협약은 2009년 9월 4일 자로 100년을 맞이해서 간도는 이제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더라도 더 이상 되찾을 수 없는 땅이 되었다. 그러나 100년을 맞이하는 그 해에도 간도에 대해 외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역사에 무관심한지를 알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 때문에 촛불을 들고 외치던 사람들의 반만이라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면 어떤 나라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려 들 수 있을까.


중국과 일본은 자꾸만 역사를 왜곡하려고 들고 있다. 이에 우리가 대응하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만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고 하였다. 간도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오나라의 왕 부차가 했던 것처럼 영광보다는 치욕을, 승리보다는 패배를 기억해야만 한다. 영광의 기억은 자부심을 넘어 언젠가는 자만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허나 치욕의 기억은 신중함과 함께 삶에 견결(堅決)함을 더해 줄 것이며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울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경술국치 이후 100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는 다시 열강이 대치하는 전선이 되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들어온 미군에 대해, 중국은 무력시위로 대응했다. 미국은 군사적 지원 대신 남쪽을 중국 봉쇄의 전진 기지로 이용하고 병참 지원을 요구하는가 하면, 불평등한 자유무역협정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또 다시 역사적 치욕에 직면한 것이다.


이래도 우리의 역사를 외면할 것인가. 이제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당당하게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한국사를 필수로 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개인 역시도 역사에 대하여 보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