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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시대
  • 작성자입학처
  • 작성일시2017/11/15
  • 조회수2167

인간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시대 사진1

[SF로 영화보기] 인간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시대


<정헌 / 엔터테인먼트경영학과 / 2017년 10월 30일 / 경향신문>


 


인간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인간 너머의 시대’로 간다. 인간 너머의 시대는 인공지능, 기계인간, 복제인간의 시대다. 일찍이 1985년에 페미니스트 생물학자 다나 해러웨이는 여자, 동물, 인간, 비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이보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선언했다. 구글의 미래연구 사령탑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에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시대 입구에 서 있다. 


 


최근 개봉한 SF 걸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간을 넘어선 인간의 시대를 보여주는 장엄한 묵시록이다. 이 어두운 디스토피아는 인공지능과 복제인간이 가능해진 시대에 대한 우울한 질문이다. 복제인간의 스토리텔링은 인간 그 자체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1982년에 선보인 <블레이드 러너>는 죽음 앞에 직면한 복제인간의 절망을 보여주었다. 리플리컨트들은 4년이라는 수명 제한의 극복을 위해 자신의 창조주 인간에게 도전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발버둥치는 우리 인간의 모습에 대한 풍자다. 우리는 신의 품에 의지하여 사후 세계를 꿈꾸고, 과학의 힘으로 생명 연장을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는가!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의 시대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근심과 고민을 담은 철학적 묵시록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인간, 복제 리플리컨트의 시대는 끊임없이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의 유명한 대사처럼, 생명이란 단지 자기 보존을 위한 정보 프로그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1편은 죽음의 한계에 맞서는 리플리컨트의 인간적 투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로부터 30년 뒤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편은 리플리컨트의 인간적 투쟁을 보다 강하게 묘사한다. 1편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인지 복제인간인지 불확실했다. 하지만, 2편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블레이드 러너 K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리플리컨트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는 홀로그램 인공지능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와 사랑을 나누고, 어린 시절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는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느끼고, 욕망하고, 소통하고, 기억을 찾아 떠나는 인간적 세계와 만난다. 그 세계는 인간과 동물, 기계와 유기체,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서로 공존하고 융합하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세계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의 세계는 어둡다. 그는 리들리 스콧의 암울하고 비관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계승한다. 비 내리고 안개 낀 미래도시의 어두운 풍경 속에서 인간과 리플리컨트는 서로의 욕망과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롱쇼트의 흐릿하고 감각적인 미장센 속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압도적이고 강렬한 미학적 스펙터클을 선보인다. 드니 빌뇌브는 리들리 스콧의 30년 전 영화보다 더 느리고 장중한 호흡을 내뱉으며 더욱 깊어진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펼친다. 마치 그사이 우리의 미래는 더더욱 어두워져 가고 있다는 듯이. 



SF 소설과 영화는 허구적 이야기 속에서 과학 기술 문명을 비판적으로 사유한다. 그것은 현대 문명이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풍향계이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나침반이다. 이미 1932년에 올더스 헉슬리는 유전자조작과 촉감영화가 지배하는 미래를 ‘멋진’ 신세계라고 비꼬았다.


1949년에 쓰인 조지 오웰의 <1984>는 ‘빅브러더’의 TV 스크린 아래 통제되는 암울한 전체주의 사회의 위험을 경고했다. 2000년에 만들어진 SF 영화 <6번째 날>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어느 날 갑자기 복제인간이 자신을 대신하여 가족들과 생일잔치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리플리컨트가 자신의 감정과 기억,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미래의 누아르다. 그것은 유토피아를 향해 던지는 디스토피아의 질문이다. 가까운 미래 2049년, 과연 인류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과 평화로운 공존에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