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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신의학회 새 정신질환 진단기준, 큰 논란을 예고하다 (DSM-5)
  • 작성자김수정
  • 작성일시2015/06/04
  • 조회수2,863

美정신의학회 새 정신질환 진단기준, 큰 논란을 예고하다

'DSM' 5차 개정안 곧 발표…정신질환 진단 과잉 초래할 것 우려 제기돼






#. 1973년,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On Being in insane Places)란 제목으로.

이 논문의 저자는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사진>. 그는 1972년에 자신의 친구 7명과 함께 정신의학계를 향한 도발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로제한을 비롯한 8명은 각각 정신병원을 찾아가 거짓말로 증상을 이야기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라는 식으로.

로제한과 다른 7명은 정신분열증과 조울증이란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들의 입원기간은 평균 19일이었다.

로제한은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란 논문을 통해 자신의 도발적인 실험 결과를 정리해 발표했다. 정신의학 분야는 로제한의 이 장난같은 실험으로 엄청난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더 큰 충격은 그 이후였다. 로제한의 실험에 발끈한 한 정신병원이 "우리에게 앞으로 3개월간 가짜 환자를 보내라. 모두 가려내겠다"고 제안했다. 3개월 뒤 그 병원은 "가짜 환자 41명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로젠한은 단 한 명의 가짜 환자도 보내지 않았다.

사실상 정신의학은 로젠한의 실험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 정신의학계는 모호한 정신질환 진단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 개정에 착수했다.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이하 APA)의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 제5판(DSM-5)' 공식 발표를 앞두고 정신질환 진단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일 조짐이다.

앞서 APA 이사회는 작년 12월 초 정신질환 분류와 진단기준을 대폭 수정한 ‘DSM-5’를 확정한 바 있다.

DSM은 1952년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DSM-4는 1994년 개정된 이후 지난 2000년 약간의 수정을 거친 기술정정판이 나온 이래 20여년 가까이 사용돼 왔다.  

이번에 APA가 개정한 DSM 5차 개정안은 2000년 이후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향상됨에 따라 이를 반영하기 위해 그동안 정신의학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DSM 새 개정안은 환자가 보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 APA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DSM 5차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광범위한 발달장애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autism spectrum disorder)를 공식명칭으로 승인하고, 가벼운 형태의 자폐증인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명칭을 삭제했다.

정도가 심하고 잦은 분노발작(temper tantrum)이 ‘분열적 기분조절장애’(DMDD)란 명칭으로 정신질환 진단명에 추가시켰다.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난독증(dyslexia)이라는 명칭을 없애는 대신 ‘학습장애’라는 넓은 범위의 정신장애에 포함시켰다.

자신이 잘못된 성(性)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성 정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를 자신의 성에 대해 감정적 불쾌감을 느낀다는 뜻인 ‘성 혐오감’(gender dysphoria)으로 명칭을 바꿨다.

5차 개정안은 가족 등의 죽음으로 한 ‘애도’(grief)의 상태에 대해서도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정신질환 진단 분류에 넣었다.

APA는 5월 중 이런 내용을 담은 DSM 5차 개정안을 발표하고 정신과 임상 현장에서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 영국 옵저버지의 관련 기사 이미지 ?쳐.

정신의학적 진단 따른 약물 치료의 유효성에 의문 제기돼
"DSM 5차 개정안, 정신질환 진단 과잉 초래할 것"

그런데 DSM 5차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최근 영국 심리학계에서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의견을 냈다.

영국 일요판 신문인 옵저버(The Observer)에는 지난 13일자로 영국심리학회의 임상심리학 분회(DCP)가 발표한 성명서가 보도됐다.

DCP는 이 성명을 통해 “"정신질환이 생물의학적 요인 때문에 발생해 약물로 치유할 수 있다는 인식은 오류"라며 "조현병(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 등 대표적인 정신병의 진단도 유효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DCP는 "정신건강의 이해와 관련해 패러다임이 바뀔 때"라고 강조하며 정신의학적 진단에 따른 약물 치료의 유효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DCP의 이러한 성명은 빈곤, 차별, 학대, 정신적 외상(트라우마) 등 사회적·심리적 환경의 복잡한 결과 때문에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는 증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학계가 정신 건강 문제를 단지 생물학적 질환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정신의학계 내부에서도 DSM 5차 개정안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DSM-5가 시행에 들어간 경우 정신질환 진단 범위가 더욱 확대되고, 이로 인해 정상인을 정신질환자로 둔갑시키는 문제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특히 DSM 개정판이 수백만의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정신질환을 가진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줍음을 타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것조차 의학적 문제로 보고 약물로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개정안이 항우울제 등을 판매하는 거대 제약업계의 이익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앞서 DSM-4의 발행 책임자였던 듀크대학교 정신의학자인 앨런 프랜시스는 지난해 12월 APA가 DSM-5 개정안을 공개하자 “DSM-5는 정상인을 정신이상자로 만들며 제약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정신의학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켜 정신질환 진단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DSM-5 개정안이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보다 적극적으로 완화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일례로 분노발작을 ‘분열적 기분조절장애’로 정신질환 명단에 새로 추가시키는 것과 관련해 이런 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자칫 양극성장애(조울증)로 잘못 진단돼 부작용이 있는 항정신성 약물이 처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미국의 아동·청소년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가인 해롤드 코플윅(Harold S. Koplewicz) 박사는 최근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DSM을 비롯해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진단 도구는 (환자들이 가진 문제를)각능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아줄 것이며, 더 나은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국의 주요 건강자선기금인 '마인드 채리티'('Mind'·Mental health charity)의 최고 경영자인 폴 파머는 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정신건강 상의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DSM-5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진단은 사람들에게 보다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지원이나 혜택 등의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정신의학회가  DSM-5이 개정안이 공식 발표되고 시행에 들어갈 경우 국내 정신의학 분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DSM을 정신질환 진단 분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의대 정신과학교실 최보문 교수(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는 “DSM-5차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가면 정신과 환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또한 제약사의 관련 (마케팅)활동이 강화될 것이고, 건강보험 재정 부담 역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 교수는 “미국정신의학회의 DSM 5차 개정 이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게끔 진단과 관련된 보험 코드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며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의학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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