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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연극이다..
  • 작성자정승일
  • 작성일시2006/09/21
  • 조회수639
 • 골프는 연극이다



우연히 뮤지컬 배우 소냐(본명 김손희)가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았다. 수년전 혼혈아로서 흑인 아빠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 감격적으로 상봉하는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있어 그 때 이후 소냐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채널을 고정시켰다.

수년 전의 소냐는 패티 킴을 닮은 가수로 등장했다. 타고난 재능이 번뜩거렸으나 출생에 얽힌 정체성 혼란과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지원기반으로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소냐가 뮤지컬로 방향을 바꾸더니 어느 새 특급 스타로 우뚝 서 있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당당히 오디션을 거쳐 ‘지킬 앤드 하이드’의 주역으로 캐스팅 되면서 소냐는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카르멘, 패임, 렌트 등의 뮤지컬에 출연한 소냐는 오는 9월 ‘마리아 마리아’라는 창작뮤지컬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기로 돼있다.

이런 과정을 소개하면서 소냐가 공연 준비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한창 무대장치를 꾸미는 시간에 소냐가 무대 한 켠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장면이었다. 공연을 위해 그 몇 십 배의 연습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출연배우들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공사소음으로 시끄러운 무대에서 연습을 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저런 열정이 있었기에 온갖 어려움과 갈등을 딛고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는 뮤지컬 스타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골프 역시 연극과 같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맞다. 골프야말로 가장 연극적인 요소가 응축된 게임이다. 연극의 3요소가 희곡 배우 관객이라면, 골프에서 희곡은 한 개인의 머리와 육체에 각인된 골프 관련 지식과 기량, 습벽이 될 터이다. 배우는 물론 자신이고, 관객은 동반자 혹은 갤러리일 것이다. 연극에서 뺄 수 없는 무대는 바로 골프코스가 아닌가.

훌륭한 배우라면 희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무대 공연을 통해 관객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훌륭한 골퍼 역시 골프와 관련 지식과 기술, 매너 등을 익혀 골프코스에서 멋진 게임을 펼쳐 동반자들을 감동시키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 성공적인 무대 공연을 위해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듯, 성공적인 라운드를 위해서도 숱한 절망을 이겨내야 하는 연습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도 연습 없이 무대에 올라 관객을 즐겁게 할 수 없듯, 아무리 출중한 골퍼라도 부단한 연습과 준비 없이 만족스런 게임을 펼칠 수 없다.

주말골퍼들 중에 라운드 당일 허겁지겁 골프장에 도착해 아무런 준비 없이 라운드에 돌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중에는 그럭저럭 연습장을 다니면서도 라운드 당일에는 티오프 시간에 임박해 골프장에 도착해서는 식당에서 잠시 머무르다 바로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서는 게 다반사다. 몸은 굳어있고 호흡은 거칠고, 마음도 느긋하지 못해 서두르는 동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필경 미스 샷이 나오고 네댓 홀이 지나서야 제 페이스를 찾게 되지만 이미 스코어가 엉망이라 그 날의 라운드는 기대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리고 만다.

물이 오른 연기력을 발휘하는 배우가 공연기간 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하듯, 훌륭한 골퍼 역시 평소는 물론 라운드 당일에도 철저히 연습하고 대비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축구 야구 배구 등 어느 스포츠분야든 메인 게임에 앞서 몸과 마음을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몸을 풀며 워밍업을 하듯, 골프 역시 라운드에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어떤 방법으로 준비하는 것이 최상인지는 모르지만 필자의 경우는 이렇다. 라운드 약속이 정해지면 전날까지 꾸준히 연습을 함은 물론이고, 당일에도 티오프 서너 시간 전에 집을 나와 골프장 근처 연습장에서 한 시간에 걸쳐 모든 채를 손에 익히는 연습을 한 뒤 최소한 한 시간 전에 골프장에 도착한다. 일행이 도착하기 전이라 퍼팅, 벙커 샷, 어프로치 등 평소에 할 수 없는 연습을 한 뒤 등에 땀이 촉촉이 배일 정도가 되어 식당에 올라가 일행을 맞는다.

남들은 첫 홀에 이르러서야 스트레칭을 하고 클럽을 휘둘러보지만 몸과 마음이 제대로 워밍업 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반면 이미 서너 시간 전에 집을 나와 연습장을 거친 필자의 몸과 마음은 완벽한 ‘운동모드’로 전환된 상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드에서 출발한 라운드의 결과는 물으나 마나다. 라운드를 돌기 전에 이미 결판이 난 셈이다.

골프는 연극이다. 연습에 게으른 배우가 무대에서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다. 연습을 게을리 하는 골퍼가 결코 필드에서 좋은 라운드를 만들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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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일보 논술위원실장으로 계시는 방민준 선생님의 글입니다..
방위원님은 골프와 관련된 칼럼과 중국의 고전과 이슬람, 성경 등에 나타난 정신세계를 골프와 접목한 글도 쓰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