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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왔어. 조금만 더 버텨줘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3/11/04
  • 조회수3028

엄마, 나 왔어. 조금만 더 버텨줘 사진1

(중부피플97)엄마, 나왔어. 조금만 더 버텨줘, 서연동문의 국립암센터 병동 24시간

새벽 4시. '따르릉~’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하루 시작이구나.’


무거운 눈꺼풀,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한다. 일반적으로 병동 간호사는 3교대로 일한다. Day, Evening, Night. 밤낮이 항상 바뀌고 근무(duty)가 일정하지 않아 힘들기도 하지만 지루하지 않아서 변화를 좋아하는 나에겐 나름 괜찮은 것 같긴 하다.

Day 근무는 참 일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기에 두려움 반, 환자들을 간호한다는 설렘 반으로 병동으로 길을 나선다. 솔직히 두려움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암센터여서 다른 병원들과는 다르게 중증도가 높아 최악의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어제 마주보며 앉아 이야기 하던 환자가 하루아침에 의식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이른 5시. 병동 도착. 환자들에게 밤 동안 무슨 일은 없었는지 EMR(Eleco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간 있었던 event들과 당일 치료 계획들을 확인한다. 매번 보는 환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환자들의 History(과거력)와 Chief Complaint(주호소)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요즘은 대부분의 병원들이 전인간호(comprehensive nursing care)로 간호사 1인이 몇 명의 환자들을 할당받아 그 환자와 관련된 신체적, 정신적, 영적 간호들을 수행하는 시스템으로 간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물론 아직 functional nursing system으로 운영되는 병원도 있다.)


강천보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봐야 하는 환자는 15명.

‘화이팅! 나는 일하는 간호사가 아니라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이다. 하나님, 오늘도 무사히 잘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Night번에서 Day번으로의 인계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침 정규 Vital sign(활력징후, 이하 V/S) 측정으로 병동 rounding을 시작한다. rounding 첫 할머니부터 이상하다. 오늘 퇴원 예정인데 소변도 못보고 지남력을 사정해 보니 대답을 잘 못한다. "○○○님, 저 누구에요, 여기가 어디죠, 지금은 언제인지 아시겠어요?“ 지남력이 없다. mental change가 온 것 같다. 일단 V/S은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담당의사가 나오면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 할머니는 담도암 말기로 supportive care를 하고 있었는데 몸의 부종이 너무 심해 병동에서 말초혈관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환자였다. 보호자인 할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이 사람 오늘을 못 넘길 것 같아...”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런 말씀 하시지 말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오전 8시, 책임간호사 선생님이 병동 rounding을 하다 할머니의 이상소견을 확인하셨다. 담당의와 상의해서 예정에 없던 혈액검사를 나가기로 했다. 당연히 퇴원 취소. 우리 병동은 간암센터로 일단은 환자의 의식수준이 떨어지면 간성 혼수를 의심하고 이에 준한 치료에 들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의 의식이 더 없어지면서 검사에 들어가기 시작했으나 말초혈관을 확보할 수 없어 중심정맥관을 확보하는 시술을 먼저 해야 했다. 할머니가 시술을 간 사이,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검사 결과에 큰 이상이 생겼다.


신장수치가 안 좋아지면서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고칼륨혈증이 와 재빠른 처치가 필요했다. 빨리 처치를 해야하는데 할머니는 침대 채로 시술에 가서 자리에 없고, 나머지 14명의 환자는 계속 보아야 하고...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물 한모금 마실 시간도 없이 긴박하게 시간이 지나갔다. 이래저래 일하다 보니 벌써 오후 1시. 시술을 하고 온 할머니는 아침보다 상태가 안 좋아져 1인실로 옮겼다. 보호자는 딸이 와 있었다. 딸은 어머니의 몸을 쓰다듬으며 ‘엄마, 나 왔어. 조금만 더 버텨줘.’라며 속삭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의식수준은 벌써 혼수. 마지막 rounding을 나가면서 day근무 때 할 수 있는 manage를 최대한 했다. 할머니는 숨을 간당간당 쉬고 있었다. 오후 1시 50분경 evening번에게 인계를 주기 전 불안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할머니를 보러 갔다. 기분 나쁜 예감은 적중했다. 할머니가 이상했다.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었는데,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순간 할머니의 몸은 축축해져 있었다. 다른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며 심폐소생술(이하 CPR)을 시작했다. 심장압박을 하는 순간 심장에서 피가 꿀렁하는 소리가 났다. CPR방송을 냈고, 의사들 10명 이상이 긴박하게 뛰어오며 심폐소생술을 지휘하기 시작했다(CPR을 하는 병동은 무조건 모든 일이 all stop이다). 담당 간호사인 나는 이 상황이 생긴 과정을 짧게 요약해 주며 notify(보고)했다. 심폐소생술을 30분 정도 했을까, 결국 할머니는 돌아오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멍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보호자들.. 나와 웃고 이야기 했던 환자 하나를 그렇게 보내고 만 의료인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짓눌렀다. 할머니가 의식을 잃기 전,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간호사님 얼굴이 천사 얼굴 같아요. 웃는 얼굴로 나를 격려해 주니 너무 좋아요.” 내가 했던 한마디 긍정의 말이, 그 환자에겐 희망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간호사란 직업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이다. 한 생명이 내게 달려있는데 그 중압감이 얼마나 큰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극적인 경험뿐 아니라 나의 간호행위로 한 사람의 생명이 더 연장되고 건강해질 수 있기에 자부심과 희망을 가지고 현 시대의 나이팅게일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고태용동문대학교 3학년, 실습 나가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식 때 했던 나이팅게일 선언문을 항상 기억하려 한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을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나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 간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배우고 걷기 시작한 2년차 간호사로서 일단은 일을 배우기 위해, 사명감 잊고 일을 할 때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때마다 힘들어 하는 나 자신 스스로에게 내가 간호사가 된 이유, 사명감, 그리고 ‘나는 생명을 살리는 간호사다! 간호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말자!’ 되뇌이며 간호를 제공하려 부단히 노력한다.
사명감과 보람을 가지고 일하지 않는 간호사는 오래 갈 수 없다. 나는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간호사, 그리고 이제 간호사로서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꼭 이야기 해주고 싶다. 간호사를 하나의 직업으로만 생각하면 간호는 일이 될 수밖에 없지만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환자에게 희망의 말을 건넬 때 간호는 나에게 행복과 보람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간호를 제공하기 위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앞으로 내가 간호사로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어떤 기업에서 산업 간호사로 있을지, 의료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할지, 교육제공자로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나는 생명을 살리는 간호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간호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