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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반 친구들, 너희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3/02/26
  • 조회수3092

도움반 친구들, 너희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사진1

(중부피플91)도움반 친구들, 너희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박세아,회덕초등학교, 초등특수교육과05)

아이들을 지도하는 박세아동문


# 첫 출근


늦은 밤 비가 내렸는지 출근길 나뭇잎들이 촉촉한 얼굴이다. 개학.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을지, 방학숙제는 잘 해 왔을지, 다치거나 아픈 아이들은 없을지.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첫 출근하던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이 케이크에 촛불 하나를 켜고 나를 맞이해 주셨다. ‘첫 출근을 축하한다. 딸아.’ 고배를 마신 경험이 많아서 인지 합격을 해도, 신규 연수를 가도 무덤덤했는데 촛불을 끄는 순간 ‘아, 나 정말 교사 된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초등특수교육과에 05학번으로 입학한 해부터 7년. 7년이었다.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달려온 시간. 3번의 낙방, 3년간의 노량진 생활. 20대 청춘의 7할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힘들었겠다. 고생했어.’라는 말로 그 시간들을 위로하려 하지만 돌아보니 내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청춘을 담보로 온 힘껏 정면승부를 한 시간. 그 시간들이 뿌리를 단단히 하고 긴 계절을 나기위한 거름을 준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여름방학 막바지에 63빌딩 전망대에 다녀왔다. 노량진에서 지내다 보면 63빌딩은 애증의 대상이 된다. 노량진 어디에서건 보이는 우뚝 선 금빛 63빌딩. 아침이면 떠오르는 햇빛에 반사된 금빛은 어찌나 화려하고 아름답던지! 노량진을 외딴 섬으로 표현한다면 63빌딩은 노량진 밖의 모든 세상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합격 하거든 저 전망대에 올라 노량진을 바라봐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마침내 63빌딩 전망대에 올라 눈으로 더듬더듬 추억을 찾았다. 수업을 듣던 학원, 이른 아침 찬 공기를 가르며 갔던 독서실, 작지만 나만의 쉼터였던 고시원. 코끝이 찡해졌다. 풍경이 일렁이도록 추억할 장소가 있다는 것은 추억하고 싶을 만큼 치열하고 아름다웠던 어떤 날의 내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추억하고 싶은 청춘의 한 구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뻐근한 일인가.


# 개학


박세아동문‘회덕 초등학교’ 교문을 지나 빗물고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에 들어온다. ‘도움반 1’. 내가 한 학기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학기를 보낼 교실이다. 창문을 열어 방학동안 묵은 공기를 내보내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이한다. 책상에 앉으려니 저쪽 복도 끝에서 상민이가 걸어오는 힘찬 발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크게 인사하는 소리를 보니 상민이가 맞다. 문을 드르륵 열며 ‘안녕하세요!’하는데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학동안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온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상민, 이리와봐~’하고 불러 세워 머리를 헝크러 뜨리니 간지럽다는 듯 자지러지게 웃는다. 하나 둘 아이들이 등교하고, 방학동안 있었던 일을 주제로 국어 수업을 한다. 이제 육하원칙에 맞추어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 졌는지 기특하게도 도움 없이 제법 잘 해낸다. 한 명 한 명 서툰 발표를 끝낼 때 마다 크게 박수를 쳐준다. ‘칭찬과 사랑.’ 학기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듬뿍 주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두 가지 이다. 두 번째 시간에는 방학동안 서로 달라진 모습 찾기 놀이를 하기로 한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변화를 찾아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파마한 상민이의 머리가 단연 화제였다. 엉뚱한 대답들도 많았지만 제법 서로를 잘 알고 있어 기특하고 신기했다. ‘선생님은 변한 것 없어요?’ 하자 정민이는 늘 그렇듯 바뀐 내 매니큐어 색을 찾아냈고, 정호는 내 머리색이 바뀐 걸 용케도 알아냈다! ‘귀여운 것들, 방학동안 날 잊지 않고 있었구나!’ 이 사랑스러운 녀석들과 새 학기에 무엇을 할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자, 활기찬 2학기의 시작이다!


# 특수교사


박세아동문아직은 ‘애기 선생님’ 혹은 ‘막내 쌤’ 으로 불리는 햇병아리 교사지만, 짧은 시간 학교에서 지내보니 특수교사는 스스로 정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특히 특수학교가 아닌 특수학급에 있는 경우 더더욱 그렇다. 정해진 틀이 없기 때문에 다른 교사들에 비해 자신의 교육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반면, 나태한 교사가 되어버리기에도 쉬운 면이 있다. 정해진 교육과정도 없고, 이것저것 물어 볼 수 있는 동료교사나 학년 부장 선생님도 없다. 일반적인 사항은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시지만, 특수교육에 관한 그 학교에서 내가 유일한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책임과 자유는 두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이는 특수교사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교사되기.’나의 바람이면서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 미래의 모습을 그리면서 전공지식을 쌓고, 봉사활동이나 계절학교 교사 등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요즘은 어느 곳엘 가도 ‘현장체험 학습 장소로 적절할지’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시설 배치나 경사로를 살피고, 동선이 너무 길지 않은지, 아이들의 주의를 분산시킬 주변 요소는 없는지, 요금과 교통편은 어떠한지 살피고 있는 나를 보면 이것도 직업병이지 싶다. 그러나 후배들에게는 보다 앞서 직업병에 걸리기를 권한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든 ‘나중에 아이들과 여기서 무얼 할지’ 혹은 ‘아이들과 이곳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는 멋진 나’를 생각하다 보면 때로 힘들고 지루한 공부도 재미있어 질 테고, 내가 정말 특수교사가 될 수 있을 까 하는 두려움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