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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꿈을 키우는 힘, 중부대학교입니다

2人2色 새로운 인생 도전기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2/04/17
  • 조회수2617

2人2色 새로운 인생 도전기 사진1

(중부피플82)여러분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장홍준(낙농학과86, 총동창회장, 명엔지니어링)

 


나의 새로운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맥도날드 명동점 팻말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안예나 동문안예나 유쾌한 성격! 상쾌한 미소! 통쾌한 재치! 저의 생활철학입니다. 저를 어필하는 나만의 브랜드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운 일을 찾으면서 자연스레, 2010년 한국맥도날드 공채 신입사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너의 성향과 잘 어울릴 것 같다 한번 도전해보렴’ 이라고 조언해주신 대학교 동기이자, 인생선배의 팁이 있었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극심한 취업난과 터무니없이 높은 경쟁률을 보면서, 내심 마음이 위축되어 있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원서를 준비하고 공부하며 당당하게 10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전기엽 저의 새로운 도전은 20년전의 인연을 통해 시작하게 됩니다. 1992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 경기도 일산에 시간당1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날 순식간에 불어난 물을 피해 저는 옥상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고, 한 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든 폭우 속에 혼비백산하고 있을 때 강한 빗줄기를 뚫고 구조헬기가 와서 구조되었습니다. 당시 어린 제 마음속에 생명의 은인이고 보람된 일을 하는 헬기조종사가(서승철 준위) 너무나 멋져 보였고 어른이 되면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현실에 쫓겨살면서 어렸을 때의 꿈을 잊고 살다가 육군 학사장교(44기)로 임관해 통신장교로 근무하고 전역을 얼마 앞둔 시기에 잠시 잊고 있었던 헬기 조종사의 꿈도 다시 살아나 전역 후 영어강사로 생활하면서 항공 조종준사관이 되기 위한 준비를 틈틈이 해 ’09년 11월에 최종합격하고 육군항공학교에 입교하게되어 지금의 블랙호크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나의 대학시절. 뒤돌아보면 이런 추억들이 기억에 남는다.


 


안예나 4년 중부대학교 나의 대학시절은 어느 하나 놓치기 싫은 소중한 경험들뿐입니다. 1학년 때는 신입생으로 학과생활에 충실하며 추억을 쌓았고, 2학년부터 학과 간부와 학생생활관 층장을 하면서 부사생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타이트하고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때의 인맥은 지금의 큰 재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인맥 하니까 생각나는데 1학년 때 가치관과 삶이라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다른 수업보다는 조금 더 열려있고 즐거웠는데 그때의 수업이 제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추억들이 있지만, 가치관과 삶의 수업이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또 학과생활을 하며 ‘청와대 방문’이 있었는데 정말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평생에 청와대 출입을 하며 사진도 찍어보고 그곳의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 했을 때, 극도의 심장 떨림은 아직도 잊지 못한답니다.


전기엽 제 대학시절을 뒤돌아보면 절로 웃음짓게 되고 벌써 이렇게 추억이 되었나 생각이 드는데요 그중에 가장 뜻깊고 소중한 인연을 생각하면 제가 처음 정보통신공학부에 입학했을 때부터 졸업할 때 까지 아껴주시고 이끌어주신 은사님(이동렬 교수님)일 것입니다. 신입생때 동아리선배를 따라 우연히 동아리사무실에 들렀었는데 그때 교수님을 처음 뵙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저를 다정하게 맞아주시고 대학생활에서부터 학교소개까지 세심하게 지도해주었습니다. 그것이 발단이되어 때론 아버지같이, 생활할 땐 스스럼없는 형같이 대해주시는 교수님과 1학년을 보내고 교수님의 권유로 인도 IT유학(Aptech)을 국비장학생으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에만 국한되있던 눈을 세계로 넓힐 수 있었고 다른 학교 대학생들과 그리고 현지민들과 교류하면서 많을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3학년에 귀국해서도 토플을 준비하여 4학년말에 다시 미국유학(Murray Univ.)을 할 수 있는 밑걸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4년동안 2년이상을 외국생활을 하며 장학생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입생때부터 옆에서 지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은사님이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힘들 때와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안예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경쟁력이 뭐가 있냐면...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문기라고 하나요? 저만의 경쟁력은 Activity입니다. 저는 경찰경호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항상 도전하고 많은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저의 성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많이 티가 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랬던 적도 있었어요. 입사원서 최종 4차 면접을 앞두고, 3명의 임원진과의 면접이 있던 날 이었는데 저는 들어가기 전에 면접 같이 잘 보자고 이야기도 했었고, 좀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서 면접장 들어가서는 차렷! 경례! 하면서 분위기를 좀 유연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사님께서 “안예나씨구나. 경호학과 나온 사람이 굉장히 궁금했는데” 라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분위기를 쉽게 이끌고, 이런저런 저의 모습을 눈 여겨 보시는 것 같았답니다. 저는 그 곳에 합격하여 지금 일하고 있답니다.^^


블랙호크 헬기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전기엽 동문전기엽 힘들때-누구나 힘들고 어려울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는데요. 가장 힘든만큼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육군 통신장교로 전역 후 28세 나이에 조종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1년에 한번있는 시험을 치뤘는데 예상치못하게 1차시험을 합격했습니다. 많으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필기에 합격하고 순조롭게 잘될 것같은 생각에 내심 기대를 했는데 2차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법이라... 그 부담은 저에게 자신감을 잃게 만들고 위축되게 했습니다. 적은 나이도 아니고 ‘다시 도전해서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자신없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이런말을 들었습니다. ‘Anyway It's your life’ 시험에서 떨어진것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것도 전부 내가 선택하고 내 삶을 사는것이지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내 자신에게 당당하고 신앙으로 살아가면 된다는 말로 다시한번 힘을 얻고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에서 가장 힘들때가 있다면 그때가 바로 인생의 'Turning Pont'라는 것을 알고 현명한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보람있을 때 - 가장 보람되었던 때는 조종사로 임관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블랙호크를 배정 받을때였습니다. 우리나라 여건상 매년 10명내외의 조종준사관이 임관을 하는데 이중 소수 인원만이 블랙호크를 타고 나머지는 다른 기종을 받게 됩니다. 분류기준은 임관성적으로 나뉘는데 항공학교에서 36주의 고된 훈련 끝에 조종사로 임관하고 그렇게 타고 싶었던 블랙호크까지 더불어 배정받았을 때가 가장 뿌듯했던것 같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회의 벽은? 그 벽을 나는 이러하게 극복할 것이다.


 


안예나 사회의 벽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인간관계가 아닐까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오해는 오해를 낳을 때, 그리고 신경이 쓰일 때, 저는 사람들과 많이 접하는 일을 하다보니깐 가끔 오해가 생길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마음을 종종 다치는 일도 생기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고, 웃음으로, 진심으로 대하고 소통할 땐 그 오해가 깨지고 더 깊은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무언가에 계속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참 힘들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라는 정답이 있기 때문에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후배들이 있다면, 어떤 준비와 절차, 그리고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전기엽 저와 같이 육군조종준사관이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저는 흥쾌히 도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단 이 직업뿐 아니라 어떠한 직업을 선택할때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본인이 정말로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그 꿈을 향해서 나아갔으면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말고, 지금도전하면 반드시 노력의 댓가는 온다고 믿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 시험을 준비할 때 영어시험에 분별력을 높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홈페이지의 ‘항준회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안예나 칭찬받을 때가 아닐까요?^^ 저는 칭찬 받는 것이 참 좋던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바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이 지나간다 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간 나의 소소한일상은 ‘여유’라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많이 바쁘고 정신없이 일하다가 찾은 나만의 행복이라고 하나요?


전기엽 이제 조종사생활을 한지 어느덧 일년이 지났는데요. 아직도 부족하고 배울게 많은 신참 조종사지만 G-20정상회의, 연평도, 세계육상세계선수권대회에 대태러임무 및 VIP중책을 수행하면서 나도 대한민국의 한사람으로 필요한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낍니다. 또한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도 붉은 노을이지는 하늘을 비행 할때면 씻은 듯이 날아가곤 합니다.


 


나의 꿈은 여기까지이다.


 


안예나 저는 참 여러 가지 꿈을 꿉니다. 어른들이 꿈을 크게 가지라고들 하잖아요. 앞으로 몇 번이나 바뀔지도 모를 만큼 꿈 많은 소녀(?)이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이가 들었을 때 그것을 강단에 서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가치관과 삶’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양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전기엽 요즘은 틈날때마다 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20년후의 발전된 나를 위해서는 좀 더 깊이있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베테랑 조종사는 물론이고 항공공학에 있어서도 박사과정을 이수하여 우리나라의 항공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생각입니다. 지금 KHP사업이 진행 중에 있는데 차세대 주자로서 손색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후배들에게 이말은 꼭 해주고 싶다.


 


안예나 저는 학교 다닐 때 좀 무서운 선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연락하는 후배가 많지 않지만 하하^^. 선배님들과 좀 많이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느낀 것이 하나 있어요. 나를 평가하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윗사람의 영향도 있지만,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윗사람에게는 누구나 잘 하지 않나요?^^ 저 선배처럼 잘 돼야지.. 라는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3학년 때부유했었습니다. 누구나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선.후배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저는 후배들에게 조금 소홀해서 지금은 많이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형? 만나고 이야기하고 공유하시길 바래요. 중부대 화이팅!


전기엽 매번 비행할 때 하는 선언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리준비하고 계획할것!’ 아직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을 줄압니다. 하지만 충분한 고민을 한 후에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했으면 합니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아무리쉬운 일이라도 어렵게 느껴지고 된다는 자신감으로 막상해보면 어려운일도 감당할 만할 것입니다. 젊기에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고 어떠한 실패도 성공으로 승화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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