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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 그려진 행복한 그림들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2/03/06
  • 조회수2593

시골마을에 그려진 행복한 그림들 사진1

(중부피플80)시골마을에 그려진 행복한 그림들, 김주아(만화애니메이션학과,09학번)

 


학업에만 취중하고 있던 나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들어왔다. 쾌지나충청'벽화만세'라는 KBS-TV 방송프로그램을 찍지 않겠냐는 제의였다. 3일 동안 작은 마을 안에서 벽화를 그려주고 마을 홍보도하고 시골 체험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프로그램 취지였다. 고민이 앞서기 시작했다. 날도 너무 덥거니와 내가 봉사를 한다는 것이 나 스스로 웃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봉사란 것을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에 나는 선뜩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벽화라는 작업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담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들마루위에서 휴식중이른 아침 7시. 밤새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밤을 새운 나는 서둘러 일을 마친 후, 우리 벽화팀이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달음박질을 했다. 벽화를 그릴 색색의 아크릴과 페인트. 그리고 큰대야와 롤러, 붓들을 한명씩 손에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1시간 쯤 가서 도착한 곳은 대전 KBS방송국. 방송국 차로  가루실 마을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방송국이 처음이라 눈이 커졌다. 하지만 둘러볼 여유도 없이 차로 이동했다. 나를 포함한 원희선배, 민석선배, 호경선배, 권엽선배가 전부지만, 중부 최강의 벽화팀이라 확신한다. 굽이진 길을 올라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큰 저수지가 우리를 먼저 반겨주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고목들을 지나 마을회관이 보였다. 그 옆에는 우리가 벽화로 채워야 되는 벽이 내 키보다 다섯뼘 정도 더 높아 보인다. 가루실 마을 분들이 정성스레 튼튼하고 반질반질하게 만들어주신 벽이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벽을 손으로 부비적 거리며 흡족했다. 아침 일찍부터 달려온 우리는 벌써 배가 고프고 허기가 졌다. 먼저 도착한 방송국 피디님과 작가언니들, 그리고 카메라맨 분들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인근 자장면 집에서 허기를 채웠다.


그런데 이제 말하지만, 이 곳 덕산은 나의 고장이다 .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나의 마을 고장에 벽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묘하면서도 기쁜 마음에 나는 벌써부터 들떠 있다. 모두가 배를 채우자 벽화작업이 시작되었다. 방송분들은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를 하러 가고 우리는 마을회관 안에서 벽화작업을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지 의논을 하러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니 할머니 몇 분들이 모여 감자를 드시며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마을의 소박함이 벽화에 잘 묻어나올 것이라는 느낌과 필이 충만해졌다.  예산 가루실마을의 특산물과 유명한 것들을 모아 디자인 컨셉을 만들었다. 베쓰가 없는 큰 저수지와 연꽃, 한입크기에 과즙이 입속에 가득 베어드는 방울토마토가 예산 가루실의 명물이란다. 내리쬐어지는 태양아래에 우리 살이 익어가는 걸 차마 볼 수 없었던 주민 분들이 천막을 지어 주셨다. 큰 대형선풍기도 함께 말이다. 드디어 이제 우리 벽화팀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갖춰졌다. 벽화의 주인공은 마을 주민들이다. 차근차근 스케치를 해나갔다. 스케치가 끝나고 각자의 채색담당이 이루어졌다. 내가 맡은 그림은  연꽃과 물고기였다. 나는 연꽃관찰에 들어갔다 오빠들도 자기가 맡은 그림에 대한 관찰에 들어갔다. 이젠 색을 만들기 시작한다. 꾀나 신중한 작업이다. 그림은 무엇보다 색감이 이뻐야 하기 때문에 색을 잘못 만들어 칠하게 되면 너무 촌스러워 보이기도하고 칙칙해 보이기 때문이다. 밝은 하늘색 연못 베이스에 올릴 연꽃은 하얀 꽃잎에 위에서부터 빨갛게 물들어 풀어지는 연꽃을 그렸다. 한겹 한겹 정성스럽게 그렸다. 나름 흡족하다. 그 옆으로 권엽선배가 크고 작은 자갈돌을 그렸다. 원희선배와 민석선배는 푸른 산과 딸기 밭을 그렸다. 그리고는 호경선배가 마을 분들의 캐리커쳐를  스케치해서 벽화에 올렸다. 시간이 꽤 지났다 보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다. 장시간 일어서서 작업한 우리는 마을회관에 들어오자마자 모두 누웠다. 한숨도 못 잔 나는 그만 잠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낮에 먹는 자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저녁을 먹지 않고는 절대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날 저녁식사메뉴는 어죽이었다. 여기저기 어죽을 먹어보았지만 역시 예산 어죽이 최고다. 어죽을 크게  한 입 떠먹고 깍두기를 베어 무니 감탄사 연발이다. 다시 한 번 예산고장인의 자부심을 느꼈다. 이렇게 벽화 첫날을 마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숨이 막혀서 잠에서 깼다. 뜨거운 햇살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와 나의 목을 졸랐다. 밖을 나가자 거의 살인적인 태양광이 내리쬐고 있었다. 방송스태프들도 오늘 너무 더워서 어떻게 작업하겠냐고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해야 하는 것이 우리벽화팀의 현실이었다. 아크릴물감을 종이컵에 조금 부어 색을 만들고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종이컵에 있던 아크릴이 태양광에 금세 메말랐다. 그래서 계속 물을 조금씩 부어주며 섞어 주었다. 날씨 때문에 손이 더 많이 갔지만 그림 작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어제 호경선배가 그린 캐리커쳐 위에 채색이 들어가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명씩 손에 마을 분들의 사진을 들고 밑 채색을 하는데 , 긴급속보가 들어왔다. 내일 비가 엄청 내린단다. 비가 내리면 벽화작업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꾀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리는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렸다. 배경들은 모두 완성이 되고 채색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명암을 넣고 세부작업이 들어 가야하는 것을 2일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대전으로 와서 이틀 후 예산 가루실로 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밑채색을 해두었던 아크릴과 페인트가 비를 맞아 부풀고 뜯어져있었다. 우리 팀과 방송스태프는 물론 마을주민들까지 속상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다.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주민 분들도 힘을 내라고 간식거리를 사다주시고 수박화채도 만들어 주셨다. 무언가 가슴이 이상했다. 작업이 더 신중해 졌다. 붓에 힘이 더 들어갔다. 선배님들도 그런 것 같았다. 수정작업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긴급 수혈에 들어갔다. 선배 2명이 더 왔다. 이젠 재미있는 농담도 오고가고 벽화 일에 흥이 더해졌다. 날이 어둑어둑 해질 때 쯤 벽화는 비로소 끝이 났다.


우리가 그린 벽화앞에서의 기념촬영


 


 조금씩 마을 어르신들이 몰려들었다. 끝이 없는 칭찬에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졌. 하지만 불만은 없다. 또 먹고 싶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난 후 각사 악수를 하며 헤어질 채비를 했다. 선배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피곤을 뒤로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무언가를 얹은 느낌이었다. 벽화는 여러 사람들이 보는 것이라 부담되는 작업이었지만, 그 이유보다는 마을 주민 모두가 잘 되길 바라고 마을의 염원을 담은 세상에 하나 뿐인 벽화을 가나는 지금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