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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곧 기회다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1/03/11
  • 조회수2294

위기가 곧 기회다 사진1

이선배가 사는법 위기가 곧 기회다, (주)행복담기, 이기용, 경영학과 4학년

 ‘출근하고 싶고 일하고 싶은 회사’라는 사훈답게 우리가 만난 경영학과 4학년 이기용학우(48, (주)행복담기 대표)는 따뜻한 정을 가진 멋진 그런 사람이었다. 그와 얘기가 계속되면서, ‘야. 정말~’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최근 IMF이후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 말은 이기용학우를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오직 알가공의 한 길을 걸어온 알가공의 산 증인이다. (주)행복담기는 국내 최초로 훈제계란을 개발하여 상품화에 성공하였으며, 사원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기용학우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그의 얘기는 15전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그는 대한반도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HA(Home Automation)분야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사회와 경영에 대한 자신감은 그 이후 부도와 인간에 대한 배신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이기용학우는 빚보증에 때문에 깊은 산속으로 피신을 하는 상황에 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산속을 돌아다니며 풀뿌리로 연명을 했으며, 쌀을 얻어 먹기도 하였다. 그렇게 산속에서 솔잎, 칡뿌리등을 캐며, 한민족의 체질에 맞는 건강식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산속에서의 생활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으며, 그 당시 유일한 친구였던 도베르만이 그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그러던 중 신탄진장에서 오래된 지인을 만나 산속에서 캐 놓았던 칡을 제공하면서 그 댓가로 회생의 기회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자본금이라고는 칡과 아끼던 도베르만을 판돈 그리고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에서 받아 페차수준의 화물차 한 대가 고작이었다. 또한, 그에게 더 이상 회사의 사장이었다는 자존심은 거추장스러움 그 자체였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이었다. 칡즙을 만드는 기계를 구입하여 약수터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하루에 오만원 이상의 수입이 들어오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도 경쟁이 있었다. 더 좋은 기계와 서비스로 장사영역을 침범하는 사람들 때문에 수입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 갔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가정배달이다. 하루는 칡을 캐고, 다른 하루는 영업을 해가며 한 두곳씩 배달하는 가정집을 늘려갔다. 이렇게 늘어나면서 한 달에 삼백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오자 이제는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불행의 끝은 여기가 아니었다. 무허가 식품이라는 고발로 인하여 유치장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벼랑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벼랑 끝에서 바둥거리며 나무뿌리를 잡고 있는 심정이었다. 그 나무뿌리에서는 뱀이 내려오고 있고, 밑에는 낭떠러지... 이 순간 이기용학우의 얼굴은 약간 상기된 듯했다. 하지만, 그는 약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이다.’라는 생각으로 칡을 팩으로 제조하여 허가를 받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시작하였다. 회생의 실마리가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큰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업이 칡음료 제조에 덤벼들면서 더 이상 비전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한증막에서 아줌마들이 계란을 구워먹는 것을 본 순간 머리를 돌로 맞은 듯은 느낌을 받았다. ‘이거다! 굽는 계란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반응이 좋았지만, 구운 계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색깔 때문에 상한 계란으로 오인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홍보부족이었다. 또한, 이것을 알고 경쟁자가 하나둘씩 생기면서 독창적인 상품개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소금을 묻혀서 먹는 기존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서 양념을 알속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면서 이기용학우의 집은 곧 회사였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다. 전문지직의 부족과 이로 인한 생산성저하로 인한 피해가 컸지만, 나름대로 자사만의 기술력을 쌓아가면서 다양한 특허도 받았다. 하지만, 양념을 알속에 넣으면서 이로 인한 짧은 보존기간이 최대의 고민거리였다. 용기의 방식을 바꾸어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지만 실패였다. 그러던 중 본사 연구진의 밤을 새는 노력으로 인하여 훈제방식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존기간을 수십 배 늘리는 쾌거를 올렸다. 현재는 계란가공, 메추리알 가공, 응용한 찜, 지단, 디저트식품, 셋트, 위장병에 효과가 있는 알가공 처리법,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을 제거할 수 있는 알가공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작업장에서 계란 포장작업 중인 근로자와 이기용사장“이처럼 이기용학우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자체이다. 지금은 중국의 청도와 북경에서 로얄티를 받으며 기술을 이전해 주는 정도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가고 있는 그는 앞으로 그 동안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알가공 분야에서 세계최고가 되는 것과 회사의 구성원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1녀1남중 큰 딸이 대학생이라 한 집에 대학생이 두명이라며 너털웃음을 보여주는 그의 인상은 참으로 푸근했다. 일하다보면 24시간도 모자라다는 이기용학우는 산을 좋아한다. ‘산에 가면 경쟁상대가 없잖아요’라고 대답하며 웃는 그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서 힘들기는 하지만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이론적인 지식을 얻는 것이 그에게는 크나 큰 기쁨이라고 얘기하며, ‘중부대학교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길은 기업인으로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말을 맺으며, 그는 회사의 구석구석을 소개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