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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꿈을 키우는 힘, 중부대학교입니다

박철수 사진영상학과02학번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1/03/11
  • 조회수17156
이 선배가 사는법 만학도의 정열로! 박철수, 사진영상학과, 02, phototv@yahoo.co.kr


바구니모양의 조명 사진지하철에서도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책을 보는 모습들,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에서 돌아와 다시 학원으로 가는 그늘진 모습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남들이 할 때 같이 해야만 하는 강박관념은 우리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본능적인 용기를 무색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동문는 달랐다.

강릉 경포대에 있는 '송포횟집'사장인 박철수동문(53).. 그는 다르다. 그의 집엔 초등학생부터 대학원생 '학생'만 다섯이다. 막둥이 재민이는 초등학생, 둘째 재범이는 중학생이고, 맏딸 시연이는 강릉여고 2학년, 박씨의 부인 최영희(43)씨는 올초 속초에 있는 동우대에 입학했다.
대학원생이란 다름아닌 가장 박철수 동문이다. 그는 오십이 다된 나이에 본교(사진영상학과)에 들어왔으며, 현재는 다큐멘터리 사진부분에서 가장 권위를 자랑하는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대단했다. 깊은 울림을 주는 굵은 목소리와 너털웃음. 마치 인생의 답안지를 손에 쥔 사람처럼 여유 있게 자신의 진솔한 얘기를 풀어 주었다. 백발의 '늙은 학생'이 된 사연은 각별하다.

"시연이가 초등학교 다닐 땐가 봐요. 학교서 아버지 직업을 적어오라고 했더니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일'이라고 쓴거예요. (너털웃음) 돈이 다가 아니구나 싶었지요. 넥타이 매고 출근까지는 못하더라도 좀 '지적인' 아버지가 돼 줘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교장 아버지에 교사 형·동생 소문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 일찌감치 장삿길로 나섰던 그다. 경포대에서 첫손에 꼽는 횟집을 차리기까지 박철수동문의 인생은 겹겹이 고생길이었다. 액세서리 좌판부터 신발가게까지 손 댄 품목만 해도 50여가지. 산속에 들어가 민박도 쳐봤고, 겁도 없이 건축업에 뛰어 들었다가 쫄딱 망해보기도 했다. 월세로 한 칸짜리 횟집을 열었을 때도 이웃들은 비웃었다. "그때만 해도 배가 있어 고기를 직접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횟집을 운영했거든요.
주방장까지 고용해 쓰는 형편이니 혀를 찰 수밖에요. 하지만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었어요. 어차피 회맛은 거기서 거기이니 고객에 대한 서비스, 쾌적한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뭣보다 호객행위는 철저히 금했습니다. 15년 동안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큰 밑거름이 됐지요." 사진학도가 된 건 5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때문이다.

어릴 적 자식들을 앉혀놓고 자전거의 바퀴 살이 선명히 보이게 찍는 법, 쌩쌩 달리듯 흐릿하게 보이도록 찍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했던 아마추어 사진작가 아버지. 교사 될 자질이 안 보이자 촬영기술 배워 사진관을 차려보라던 아버지의 권유가 그때는 귓등으로도 안 들리더니, 유품으로 남은 아버지의 손때 묻은 카메라를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솔직히 아버지가 사진을 배워보라고 하셨을 땐 저 작은 기계를 배워 뭣에 쓰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빛의 양, 셔터를 누르는 속도, 그리고 카메라를 든 사람의 철학과 정신에 따라 이 작은 기계가 창조해 낼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2년제 동우대에서 본교로 편입을 했다. 그는 중부대에서의 기억을 더듬다가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학교 다닐때 저는 동기 선후배들과 어울리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제일 많이 간곳은 자장면집과 삼겹살집이었어요. 거기까지는 재미있고 좋았는데... ." (웃음) "노래방은 정말 힘들었어요."아시겠지만, 흘러간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들은 그렇지 않더군요. 그 어린 친구들 입에서 나오는 빠른 랩이 제 귀에는 음악성을 잃어버린 자기 언어 표현으로만 보이더라구요. 물론, 그 친구들에게 비친 내 모습은.... (웃음) 재미있었어요. " 그리고 중부대학교 4학년 시절 여름. 사진 촬영을 위해 갔던 티벳에서의 얘기는 그의 진지하면서도 무게 있는 소신과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라마교의 종교의식이 생활 그 자체였던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말했다.
라마교의 장례모습
특히, 장례문화는 아주 인상 깊었다고 한다. 사진촬영을 하면서 갖가지 통제도 받았지만 고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시간나면 꼭 다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흰머리 때문에 교수로 착각할까봐."제일 먼저 등교하고, 지각·결석은 물론 학과 운동회에도 빠지는 법이 없는 지독한 모범생. 부인 최씨 역시 동우대 사진학과에 진학한 건 순전히 남편 때문이다. "민망하죠. 젊은 학생들 뒤에 식판 들고 줄서 있어보세요.
(웃음) 잠은 또 얼마나 쏟아지는데요. 남편이랑 애들 뒷바라지에 횟집 일까지 거들려면 하루 세 시간 잘까말까 하거든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머릿속이 꽉꽉 채워지는 것 같아 신바람나지요." 박철수동문 부부는 그간 찍은 수천 통의 필름을 서가에 꼼꼼히 진열해 놨다."실수로 잘못 나온 놈들"까지 모두! 필름 한 장 한 장엔 부부가 열심히, 그리고 보람 있게 살았다는 흔적이 새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선배는 이렇게 살아 왔으며, 이렇게 살고 있다. 늦었지만, 가장 빠른 인생을. 힘들지만, 가장 보람 있는 인생을.

마지막으로 박철수동문은 사진영상학과 후배들에게"많이 보고, 많이 찍고, 많이 평가해보는 후배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경포대에 있는 우리 횟집(www.songpo.com)도 많이 놀러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감했다.